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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가위만렙님이 올려주신 영화 후기를 읽다가 문득 '하루 종일 남을 위해 억지로 지었던 가짜 표정들은 밤에 다 어디로 사라질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ㅎㅎ
그 아이디어를 메모해 두었다가 적어본 짧은 소설입니다. 불 끄고 침대에 누워서 가볍게 읽어주세요!
백화점 일층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수아에게 미소는 제복의 일부였다.
입꼬리는 정확히 15도 각도로 올리고, 눈가는 반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접는다.
하루에 백 번쯤 같은 표정을 반복하다 보면 퇴근 무렵엔 광대뼈 안쪽이 남의 살처럼 얼얼해지곤 했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비가 유독 차갑게 내리던 지난주 목요일 밤이었다.
수아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얼굴에 붙어 있던 하루치의 친절을 박박 문질러 씻어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세면대 거울 속의 자신이, 방금 전까지 백화점에서 짓고 있던 그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정작 거울 앞에 서 있는 수아의 얼굴은 피로에 찌든 무표정이었는데도 말이다.
수아가 숨을 들이켜며 눈을 깜빡이자, 거울 속의 얼굴도 그제야 아차 싶다는 듯 입꼬리를 스르륵 내렸다.
불과 일 초 남짓한 시차였다.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라고 생각하며 수아는 서둘러 욕실 불을 껐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거울 속의 '나'는 매일 밤 조금씩 느려졌다.
아니, 느려진다기보다는 수아가 낮 동안 흘리고 다닌 표정들을 뒤늦게 주워 입는 것 같았다.
금요일 밤에 양치를 할 때 거울 속의 수아는 진상 고객 앞에서 억울함을 삼키며 입술을 잘근 깨무는 표정을 지었고,
토요일 밤에 클렌징폼을 묻힐 때는 점장님의 잔소리를 들으며 지었던 비굴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수아가 거울을 향해 인상을 찌푸려 보아도, 유리 너머의 여자는 한 박자 늦게 전혀 다른 시간대의 표정을 재생할 뿐이었다.
결국 일요일 밤, 수아는 소름이 끼쳐 도톰한 목욕 수건을 가져와 세면대 거울 전체를 덮어버렸다.
거울을 가리고 나서야 비로소 방 안에서 혼자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세 시 반..
목이 말라 잠에서 깬 수아는 어두운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때 반쯤 열린 욕실 문틈으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수아는 홀린 듯 욕실 문고리를 잡았다.
거울을 덮어두었던 수건의 한쪽 모서리가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아래로 살짝 흘러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좁은 틈새로 드러난 거울 귀퉁이에서,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눈동자 하나가 어둠 속의 수아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수건을 확 걷어냈다.
센서등이 켜지자 드러난 거울 속의 자신은 기괴하리만치 매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음 주름도, 미간의 찌푸림도 모두 지워져 마치 눈코입만 간신히 파놓은 밀랍 인형 같았다.
거울 속의 여자는 두 손을 들어 자기 양 볼과 입꼬리를 반죽 만지듯 천천히 위로 끌어올렸다.
마침내 거울 속의 얼굴에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고 화사한 미소가 완성되었다.
수아가 평생 연습해도 만들 수 없었던 가장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얼마나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월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수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비틀거리며 다시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자신은 어젯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환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수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문제는 거울 밖에 서 있는 수아의 얼굴이었다.
수아가 아무리 입술에 힘을 주고 볼 근육을 움직이려 애써도, 그녀의 얼굴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차가운 고무 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거울 속의 여자가 수아 대신 출근할 준비를 마친 듯 눈을 가늘게 접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