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까지 제출해야 되는 기획안이 갑자기 엎어져서 어제 밤 11시 반까지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아서 야근했음
우리 회사가 좀 오래된 빌딩 7층을 쓰는데 밤 10시 넘어가면 중앙 냉난방도 다 꺼지고 내 자리 스탠드 조명 빼고는 층 전체가 시커매짐
원래 복도 쪽이랑 회의실 라인은 사람이 지나가야만 켜지는 센서등으로 되어 있거든
근데 밤 11시쯤에 엑셀 수식 깨진 거 잡고 있는데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복도 끝 센서등이 혼자 틱 하고 켜지는 거임..
처음에는 경비 아저씨가 순찰 돌러 오셨나 싶어서 걍 모니터만 보고 있었는데 발소리가 하나도 안 나더니 그 옆에 있는 소회의실 앞 센서등이 연달아서 탁 켜지더라
그 소회의실이 불투명한 반투명 유리(안개 시트지 붙은 유리)로 되어 있는 곳인데 센서등 불빛 때문에 회의실 안쪽 실루엣이 살짝 비치거든..
근데 분명히 퇴근할 때 다들 의자 집어넣고 불 끄고 나간 방인데 그 안에서 바퀴 달린 사무용 의자가 드르륵하고 뒤로 밀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났음
그러더니 반투명 유리 너머로 머리 산발한 시커먼 사람 실루엣 하나가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로 내 자리 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거임ㅋㅋ

보통 사람 같으면 거기서 가방 챙겨서 도망갔겠지만 난 그 순간에도 지금 컴퓨터 끄고 도망가면 내일 아침 9시에 본부장님한테 깨질 생각부터 나더라..
그러고 눈 딱 감고 20분 동안 타자만 미친 듯이 쳐서 메일 발송 버튼 누르고 가방 챙겨서 일어났는데 다시 회의실 쪽 보니까 센서등은 꺼져 있고 의자만 책상 밖으로 삐죽 나와 있더라..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슬쩍 소회의실 문 열어봤는데 역시나 화이트보드는 안 지워놓고 의자만 빼놓고 갔음 귀신도 일하기 싫은 건 똑같은가 봄ㅋㅋ
다들 수요일인데 칼퇴들 하시길 바람 야근은 귀신도 부르고 수명도 깎아먹음